1968년 7월 2일 밤, 서울 동대문경찰서 유치장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빈대 때문이었다. 통금 위반으로 경찰서에 잡혀 온 30여명의 경범죄 피의자들이 빈대와 벼룩 때문에 “잠을 한숨도 못 자겠다”고 항의한 것이다. 경찰은 “빈대가 물어도 새벽까지만 참으면 될 텐데 뭘 그리 엄살이냐”라고 호통하면서 소동이 벌어졌다.(경향신문 1968년 7월 3일)
기차에서도 종종 빈대 소동이 벌어졌다. 1970년 6월 17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을 떠나 천안역에 멈춰 섰던 특급열차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4호차 20여개 자리에서 빈대가 나타난 것이다. 빈대를 본 승객들이 일시에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혼란이 빚어졌다. 열차 승무원들이 의자 시트를 벗겨보니 좌석마다 빈대가 붙어있어 100마리를 잡아냈고, 승객들의 몸에서도 30여 마리가 나왔다.(경향신문 1970년 6월 17일)
그러던 빈대가 2023년 돌아왔다. 지난 9월 대구 계명대 기숙사, 지난달 13일 인천 서구 사우나에서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엔 서울 시내 곳곳에서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주로 다중 밀집 시설들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에 출현한 빈대는 모두 여행객과 함께 해외에서 유입됐다고 보고 있다. 양영철 을지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이불을 깔고 다시 개고 바닥을 쓸고 닦았지만, 지금은 침실이 서구화되면서 침대를 옮기지 않아 빈대가 숨어서 안정적으로 서식할 수 있는 충분한 장소가 생겼다”고 말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생태계의 먹이사슬 구조가 빽빽하게 차 있으면 어느 한 종이 대폭발하기 힘들다”며 “균형이 무너져 엉성한 먹이사슬의 틈새를 빈대가 비집고 들어와 승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 빈대와 함께 살아가야 할 날들이다. 질병관리청은 “빈대는 질병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아니라서 역학조사를 하지 않는다”며 ‘빈대 예방·대응 정보집’을 배포하는 등 개인에게 방역의 몫을 넘겼다. 빈대 퇴치에 효과적이라고 소문난 일부 제약사들의 살충제는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이시혁 서울대 응용생물학과 교수는 “빈대는 개인이 퇴치하기 힘들고 국민에 미치는 피해가 큰 만큼 관계 부처에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정부가 안내한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에 대해 빈대는 이미 2만 배에 달하는 강한 저항성(내성)을 갖고 있다. 몇 년 안에 다른 약제에도 저항성을 발달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관 주도의 방역을 통해 빈대의 저항성 발달 여부를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사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경고했다.
프랑스 등 당국은 빈대가 확산되자 방역 활동을 강화하고 탐지견까지 투입하며 ‘빈대와의 전쟁’에 나섰다. 언제 빈대에 물릴지 모를 불안과 노이로제 같은 정신적 피해를 국가적인 문제로 봤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경성부(현 서울시)도 “여름이 되면 빈대 때문에 잠 못 자는 서울 사람들에게 드리는 부청의 선물이 있다. 빈대를 쫓아내 부민에게 안면을 주고 국제도시의 누명을 벗고자 한다”며 위생과 방역사무소가 중심이 돼 집집이 돌아다니며 빈대 구제 소독을 실시했다.(조선일보 1939년 5월 12일)